플랫폼 경제 속, 난제에 빠진 新노동

2020.01.16 10:40:39

… 알고리즘 상 ‘은폐된 지휘감독’ 어떻게?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등장과 확산이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는 작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불씨를 당겼고, 그 결과 수많은 디지털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우리 삶 속에 스며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많은 스타트업은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에 주목해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문받아 바로 오프라인으로 연결시켜주는 O2O 서비스는 음식배달과 교통수단에서부터 배송·물류, 가사, 숙박서비스까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우버’, ‘에어비앤비’,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기업을 들 수 있다. 이들 플랫폼 기업은 새로운 경제·노동 생태계를 탄생시켰다.

 

일 수행자는 자신 소유의 차량·오토바이 등 운송수단을 가지고 여러 일에 나선다. 각종 배달뿐 아니라 일종의 ‘택시’처럼 타인의 이동을 돕기도 한다. 문제는 기업에서 이들을 ‘파트너’라고 표현하듯이 전통적 고용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독립 계약자 신분으로 ‘위탁계약’을 통해 업무를 수행한다. 이 같은 업무수행 방식은 당연히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고용된 노동자와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10월28일 고용노동부는 배달대행업체와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일해온 라이더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공론화와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12월 한달 서울시와 경기도는 잇따라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앱을 통해서 오더를 선택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만원짜리 오더가 팔천원에 올라와도 참고해야 합니다. 플랫폼 노동환경은 100분이 소요되는 운행시간을 70분에 마치라고 합니다. 노동자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2월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자다’ 경기도 노동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박영일 전국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같이 말했다. 업무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빅데이터와 그에 기반한 AI가 자리했다. 김성혁 전국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플랫폼노동은 일자리를 일거리로 해체시켰다”면서 “플랫폼노동은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과도기 단계로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플랫폼노동(Platform work)의 정의 또한 여럿 일 수 있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018년 ‘온라인을 통해 플랫폼을 이용해, 불특정 조직이나 개인이 문제해결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 혹은 소득을 얻는 일자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플랫폼 노동은 웹기반과 지역기반으로 나뉜다. 웹기반은 일반적으로 프리랜서들과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해외에서는 FIVERR가 한국에는 크몽이 유명하다. 지역기반 플랫폼노동은 배달 같은 호출형 작업을 수행한다.

 

 

현재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부분은 지역기반 플랫폼 노동이다. 이 경우 기존 특수고용노동자 논의에서도 항상 문제가 돼온 종속된 독립노동자와 유사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애초 고용계약 없이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이들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계약을 전제로 하는 고용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고용된 근로자처럼 일을 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 고용노동부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이하 북부지청)은 10월28일 ‘요기요’ 배달기사 5명에 대해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북부지청은 ▲임금을 시급형태의 정액수수료로 지급한 점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출퇴근 보고가 이뤄진 점 등을 들어 이들을 근로자로 판단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자수는 50만명을 넘어섰다. 김성혁 전국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플랫폼 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알고리즘상에 ‘은폐된 지휘감독’이 숨어 있어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고용형태만 휴먼 클라우드(사람구름떼)로 이동하면서 오히려 불안정 노동만 양산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당한 노동의 대가 받아야”

플랫폼 노동자 모순 상황 지적

 

정부도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보호방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2월 2째주 서울시와 경기도는 잇따라 토론회를 열고 공론화 및 정책대안 마련에 고민하는 모양새다. 특히 경기도는 토론회 자체의 이름을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자다’라는 명칭을 사용해 정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직접 참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플랫폼 노동자' 2명 중 1명이 플랫폼 사업자의 업무지시와 감독 하에 일반적으로 고용된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지만, 현행법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어 “앞으로도 지금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처럼 제도와 법률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노동현장에서 반복될 수 있다”면서 “급격한 기술발달에 따른 제도 정비와 노동 보호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정책과 발전 방향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플랫폼 노동자 보호 방안에 대해 논의됐다. 김성혁 전국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현재 플랫폼 노동은 생활물류 산업에 먼저 도입돼 일자리를 일거리로 해체시키고 있고 그 결과 공장시대 노사관계 질서를 허물고 있다”면서 “택배요금 신고제, 퀵 표준운임제 등을 도입해 공정거래를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정책연구원장은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백승렬 어고노믹스 대표(공학박사)는 “플랫폼 노동을 설명하는 용어와 개념을 한국 현실에 맞춰 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적절한 보호법 체계가 마련되기 전까지 기업이 기본적으로 준수할 규범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민, “플랫폼 노동자, 여전히 시장통계도 안 잡혀 있어”

…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해 현실적 방안 논의해야

 

‘플랫폼 노동’은 아직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토론회는 문제제기와 방향성 정도만 제시되는 선에서 그쳤다. 다만 직접 이해당사자인 배달의민족 이현재 대외협력이사와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의 토론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지적도 있었다. 라이더유니온은 2019년 11월18일 서울시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교부받고 배달플랫폼 노동자들의 첫 합법노조로 발을 뗀 바 있다. 현재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의민족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별개의 공식석상임을 감안해 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먼저 배달의민족 이현재 대외협력이사는 ‘배민라이더스’ 서비스에 대해 설명했다. 이현재 대외협력이사는 “배민라이더스는 그동안 배달하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을 배달해 소비자에게는 다양한 음식을 접할 기회를, 음식점에는 보다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접점을 확장하는데 서비스 목적이 있다”면서 “이는 음식점을 하시는 분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부동산 이슈도 해쳐나갈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재 이사는 이어 “2015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한 배민라이더스는 정규직화를 선언해 원하는 라이더에 한해 정규직화 했다”면서 “그럼에도 자율성을 보다 높게 추구하는 라이더 분들은 정규직으로 들어오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현재 배민라이더스는 라이더들을 위해 ▲보험가입 ▲안전교육 ▲민트라이더 캠페인 ▲사고에 따른 의료비·생계비 지원 위한 기금 조성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이현재 이사는 “배민라이더스가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플랫폼 노동자 처우에 대한 문제들은 다 해소되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시장 내에서 통계가 여전히 잡혀 있지 않고, 이는 결국 대책들을 만들어가 가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이어 “특히 배달 라이더들 같은 경우 보험료만 현재 수백만원에 달하는데 이런 실태조사도 필요하다”면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어떻게 현 체제 내에서 보호해야 할 것인지 거버넌스를 새롭게 구축해 다양한 현실적 방안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앱 통한 일방적 임금 변경, 여기에 자율성이 있나”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랫폼 노동 실태에 대해 구체성을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 해외사례를 가지고 이론적 상상속 플랫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면 너무 추상적·관념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정훈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배달의민족의 경우 수년간 라이더들이 만들어낸 주문 수, 날씨 등에 따른 데이터를 집적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밤9시에 다음날 배달료가 공지된다”면서 “이것이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지휘감독을 받는 것은 아닌지, 여기에 과연 라이더들에게 자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플랫폼 기업에서 프로모션을 통해 라이더들을 모집하지만, 이 프로모션도 1~2개월만에 변경되면서 앱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된다”면서 “일을 시킬 때는 사람이 등장해서 이것 좀 해 달라 하는데, 변경 시에는 앱에 뜬다. 그럼 우리는 인공지능에 따져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원론적인 질문도 던졌다. 박 위원장은 “효율성 측면에서 이제 기업이 자산을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결국 그 자산은 노동자가 소유해야 한다”면서 “플랫폼 혁신이라고 해 기업들은 데이터만 축적하고 있고, 이에 과거 자본가·사업주가 가지고 있던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훈 위원장은 “플랫폼 기업은 데이터만 소유하면 되기 때문에 무한한 축적이 가능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과연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플랫폼 노동자 보호대책 필요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플랫폼 경제시장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노동형태가 등장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조는 나오지 않은 가운데, 현장의 불안은 늘고 있다. 지금도 정부나 법원의 ‘근로사성’ 판단을 받기 전에는 각종 법상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경제에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를 다시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해외도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긴 마찬가지. 국가·지역별 사회경제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대응방안도 다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일정 조건을 갖춘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분류하도록 강제하는 AB5 법령을 통과시켰고, 이탈리아 라치오 주는 플랫폼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프랑스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2016년 플랫폼노동자의 권리를 법제화하고 법률을 통해 플랫폼기업의 책임을 명시했다.

 

‘혁신’이라는 명분 뒤에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우리도 플랫폼 노동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다양한 정책 또는 방안들을 하루라도 빨리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20

최종윤 기자 cjy@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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