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학부모, 왜 사교육에 집착하나?

2019.02.28 14:44:44

- JTBC 드라마 ‘SKY캐슬’…‘기득권 대물림’ 수단 변질된 韓 교육 꼬집어
- 사교육 집착…‘극단적 약육강식’ 韓 사회 속 ‘지위 경쟁’이 원인
- 학벌에 대한 과한 보상 조정하고, 소속·지위에 따른 부당한 대우 줄여야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SKY캐슬’이 높은 인기 속에서 지난달 종영했다.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을 소재로 했다. 부모는 자녀를 서울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는 부모가 정해준 목표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꿈인 양 돌진한다. 자녀 교육에 욕심을 안 내는 부모가 있겠냐마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자녀의 사교육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들은 왜 사교육에 목을 맬까?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는 산업화 시기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특별한 자원이 없는 나라를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려놓는데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부모의 재산이 얼마냐에 따라 자녀들이 받을 수 있는 교육수준이 결정되고 계층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면서 이 틈새를 노린 사교육 시장은 더욱 확대됐다.

 

기득권 대물림 위한 왜곡된 욕망…‘SKY캐슬’

 

“쓰앵님”,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등 수많은 유행어를 남긴 드라마 ‘SKY캐슬’. 재미로 보고 마는 드라마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곱씹어보기에 충분하다.

 

드라마의 배경은 ‘SKY캐슬’. 주남대학교(드라마 속 가상의 대학교)의 교수와 그 가족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통제된 거주지다. 드라마는 이명주(김정난 분)의 아들 영재(송건희 분)가 서울 의대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한서진(염정아 분)이 파티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서진이 축하파티를 준비한 것은 영재가 서울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포트폴리오를 명주로부터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명주는 영재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는 포트폴리오를 끝내 서진에게 넘기지 않는다. 대신 한 은행이 주최하는 ‘투자설명회 VVIP 초대장’을 내민다.

 

투자설명회는 사실 은행 VVIP들과 베테랑 입시코디네이터들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은밀하게 마련된 자리. 여기에서 서진은 영재를 관리한 김주영(김서형 분)을 만난다. 김주영은 한 번에 두 명의 학생만 관리하고, 그들을 모두 서울 의대에 보냈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상위 0.1% VVIP들에게 상전 같은 인물이다. 한서진은 김주영의 선택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아들을 서울 의대에 보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해했던 이명주는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이명주의 자살. 한서진은 그 원인이 김주영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딸 예서(김혜윤 분)를 그에게서 떼어놓는다. 그가 없으면 서울 의대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느껴서였을까? 예서는 “나 서울 의대 못 가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라며 김주영을 다시 데려오라고 닦달한다. 한서진은 김주영을 찾아가 다시 예서를 맡아달라고 무릎까지 꿇으면서 애원한다.

 

김주영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한 내신 관리는 물론 자율활동, 동아리, 봉사, 진로 활동에 교우 관리, 심리, 건강, 수면 등 예서의 서울 의대 진학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철저히 관리했고, 그 아래에서 예서는 서울 의대 합격에 꼭 맞는 조건을 갖춘 학생으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서를 위협하는 학생이 있었으니, 라이벌 혜나(김보라 분)다. 혜나는예서 못지않은 두뇌와 성취욕을 가졌지만, 소위 ‘흙수저’다. 미혼모인 엄마의 병시중을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공부해 예서와 전교 1, 2등을 다투게 됐다. 김주영은 그런 혜나가 신경 쓰였고, 한서진에게 혜나를 집으로 들이라고 지시한다.

 

예서 집으로 들어온 혜나는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예서의 방을 살피던 중 예서가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 풀었던 기출 예상 문제들이 사실은 학교에서 빼돌려진 시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출된 시험지로 공부한 예서는 당연히 전교 1등을 차지했고, 혜나는 전교 2등을 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혜나는 말한다. “인정 못 해. 이건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그길로 혜나는 김주영을 찾아가 시험지 유출 등을 폭로하겠다며 그를 협박한다.

 

얼마 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황우주(찬희 분)의 생일 파티에서 혜나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테라스에 있는 혜나를 누군가 밀어서 떨어뜨린 것.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범인으로 우주가 지목된다. 서진은 김주영이 사람을 시켜 혜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를 경찰에 알리지 않고 며칠을 고민한다. 고3인된 예서의 서울 의대 진학 때문이다. 김주영은 “예서는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 3학년 1학기 내신만 퍼펙트하면 서울 의대는 문제없다”며 서진의 욕망을 자극했고, 서진은 예서의 서울 의대 진학을 위해 이 문제를 덮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 ‘SKY캐슬’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한서진과 김주영은 예서의 서울 의대 진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예서에게 위협이 되는 혜나를 죽이고, 우주가 범인으로 지목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바로 잡으려고 하기는커녕 숨기기에 급급하다. 서진은 혜나의 죽음과 우주의 구속 이후 심하게 흔들리는 예서 때문에 결국 모든 사실을 경찰에 알려 상황을 바로 잡지만, 만약 예서가 흔들리지 않고 생활을 잘해 나갔더라면 예서가 무사히 서울 의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사실을 끝까지 숨겼을 것이다.

 

과도한 입시경쟁·사교육…조너선 거슈니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 같아”

 

드라마의 내용이나 표현 자체에는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드라마가 그리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실제로 중·고등학생들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교육을 전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학교를 마친 자녀를 차에 태워서 학원에 데려다주는 모습이나 강남 학원가에 길게 늘어져 있는 부모들의 차량 행렬, 강남 엄마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우수한 학생들끼리 그룹을 지어서 공부시키는 장면이나 실력 좋은 입시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서 학부모들이 발품을 파는 장면, 학원에서 뽑아준 기출 예상 문제로 시험 공부하는 장면, 대학입시설명회를 가득 채운 학부모들. 사교육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스펙 쌓기’ 때문에 또다시 사교육의 문을 두드린다.

 

조너선 거슈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한국의 입시경쟁 및 교육열에 대해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1월31일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청소년이 공부에 들이는 시간은 놀라운 수준을 넘어 기괴하다(grotesque)고 느껴질 정도”라며 이 같이 우려했다.

 

거슈니 교수는 “학력 집착은 능력을 중시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실력 위주 사회)’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다. 실력 위주 사회는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많다”면서 “군비 경쟁 같은 논리의 끝없는 경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상대가 전함을 만들면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도 군함을 만들고, 이 모습을 본 상대가 또 군함을 만들면 나도 다시 군함을 만드는 식의 경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거슈니 교수는 한국과 영국 청소년의 시간 사용을 비교해 ‘교육 압박(Educational Pressure)’이 청소년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은 영국뿐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학업 활동에 많은 시간(4.6시간)을 들였다.

 

그는 “한국 청소년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나 높은 PISA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국가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과연 그만한 희생을 치를 가치가 있는가, 무엇보다 그렇게 높은 점수를 얻고자 치르는 정신적 비용을 개인과 사회가 감당할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로 경쟁하다 보면 결국 더는 버틸 수 없는 시점이 온다. 상대가 겨우 좀 더 버텨서 이기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긴다”며 “자신이나 부모가 충분한 능력(Merit)을 쌓지 못했다면 원망하고 자기혐오(Self-Loathing)에 빠질 개연성이 높다. 능력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선망하는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입시에 실패하면 곧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부모들은 ‘다른 집 아이가 사교육으로 더 앞서 나갈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만 뒤처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면서 “이를 본 다른 부모들도 교육에 투자하고, 다들 지지 않으려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81% “고교는 전쟁터”…고학력자일수록 사회 불신 높아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들은 실제로 고등학교를 ‘전쟁터’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구성원의 상호 신뢰, 규범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협력, 연결 등으로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를 의미하는 ‘사회자본’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겸 한국개발연구원(KDI) 겸임연구위원의 ‘저신뢰 각자도생 사회의 치유를 위한 교육의 방향’(2018년 8월2일 KDI포커스 91호)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의 4개국 대학생 각 1,000명을 대상으로 ‘고등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물은 결과 한국 대학생들의 81%는 ‘사활을 건 전장(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하는 광장(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상호 이해와 조화 및 협동심을 체득하는 곳)’이라는 응답은 12.8%, ‘거래하는 시장(교육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 지식과 돈의 교환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인식은 6.4%였다. 중국과 일본, 미국 대학생들 중 고등학교의 이미지로 ‘전장’을 꼽은 비율은 각각 41.8%, 13.8%, 40.4%였다.

 

또한 한국의 대학생들은 교육경쟁에 대해서는 가정 배경 등의 영향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느꼈고, 부모의 경제력이 명문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경쟁이 이타적 협력을 저해한다고 봤고, 명문대학을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는 고학력자일수록 낮았다. 김 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평가(PIAAC 2015) 자료를 이용해 교육수준과 사회적 신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북유럽 국가는 교육수준의 상승에 따라 사회적 신뢰의 증가폭이 커진 반면, 한국은 동구권 국가들과 유사하게 매우 낮은 증가폭을 보였다.

 

관련해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에 대해 동의한 비율이 한국의 경우 1981~1984년 38%에서 2010~2014년 27%로, 지난 30여년 동안 11%p 하락했다. 유럽 주요국은 신뢰도가 상승했고, 신뢰도가 하락한 국가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그 폭이 크지 않았다. 독일은 같은 기간 31%에서 45%로 14%p 상승했고, 스웨덴은 57%에서 62%(▲5%p), 노르웨이 61%에서 74%(▲13%p), 핀란드 57%에서 62%(▲5%p, 2005~2009년)로 신뢰도가 올랐다. 일본은 41%에서 39%(△2%p), 미국 43%에서 35%(△8%p)로 하락했다.

 

김 교수는 “다양한 문항들로 측정한 한국 대학생들의 사회적 신뢰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며 “사회적 규범에 있어서도 일반 국민이나 공직자가 이를 준수할 것으로 믿는 비율은 한국 대학생에게서 가장 낮았다”고 설명했다.

 

결국은 ‘지위 경쟁’ 때문

 

우리나라 교육 관련 시설이나 선생님들의 수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등 교육 시스템과 고등교육 수준이 전 세계 1위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학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사교육을 멈출까?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자녀의 사교육을 멈추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답할 학부모는 과연 몇이나 될까? 열이면 열 모두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안병연 전 교육부총리와 하연섭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에서 우리나라가 사교육의 천국이 된 원인은 공교육의 실패가 아닌 ‘지위 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지위 경쟁 때문”이라며 “공교육의 질이 절대적인 차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지위 경쟁이 존재하는 한 지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사교육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공교육의 절대적인 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교육의 결과에 대한 상대적 지위 싸움 때문에 사교육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1등을 해야’ 소위 ‘SKY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더 좋은 직장, 연봉이 더 높은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SKY캐슬’에서 차민혁(김병철 분)은 자녀들에게 ‘1등’을 강요하면서 “일단 이겨야지! 무수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니들 위치야!”, “경쟁은 이기느냐 지느냐 딱 2가지 밖에 없는 거야”라고 말한다.

 

김상규 숙명여대 교수 역시 우리나라의 사교육에 대해 비슷한 지적을 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저서 ‘교육의 대화’에서 “자녀를 가진 학부모가 공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녀의 교육적 요구가 공교육으로 인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고,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공교육의 비정상화 때문이 아니라 자녀가 장래 사회적 지위 경쟁에 유리하도록 경제적 자본의 확대로 생긴 가처분소득을 교육비로 기꺼이 부담하기 때문”이라면서 “기회도 많고 위기도 많은 사회에서 학부모들은 자녀의 안정적 미래를 위해 경제적 자본을 이용해 다른 교육을 찾을 것이고, 그 결과 사교육 시장은 성장해갈 것이다. 이것은 공교육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교육이 학부모가 자녀의 학습 수준에 맞춰 선택할수 있는 자율적 영역이기에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학부모가 많아져 교육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바뀐 것도 한국의 학부모가 사교육을 찾는 원인이다. 김 교수는 “산업사회의 가처분 소득 증가는 고등교육 진학률을 급속히 확대해 대중 고등교육사회를 이뤘다”며 “교육의 효과로 학부모의 지적 수준이 확대되면서 교육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고, 학교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학교 선생님들의 학력 수준이 학부모들에 비해 대부분 높은 수준이었지만, 요즘에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학교 선생님들과 비슷한 혹은 더 높은 학력 수준을 갖는 역전현상이 생겼다. 따라서 선생님들의 전통적 권위가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학교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요구도 많아졌는데, 교육 제도와 교육의 관료화는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됐다.

 

‘지위 경쟁’의 원인…‘극단적 약육강식’의 한국 사회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지위 경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성복 독일정치연구소장은 “한국 사회가 보다 더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 서열이 견고하고, 대학 입시에 의한 경쟁의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또한 출신 대학의 졸업장이 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직업의 귀천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뉘며, 같은 일을 하더라도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소득 수준이 크게 차이 난다.

 

조 소장은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에서 “비정규직의 증가, 소득의 양극화 심화 등에 따라 구성원 간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교육을 통해 이런 상황을 알리고 그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아이가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승자가 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서울대가 100m를 11초 이내에 달리는 학생을 뽑겠다고 하면 대다수 부모는 갓난아이 때부터 달리기 훈련을 시킬 것”이라며 “선행학습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유치원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고 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에게 오로지 좋은 점수나 등수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경제적 시스템 개혁으로 격차 해소

 

조 소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개혁해 교육을 받은 후 이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는데, 독일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무작정 대학에 보내려 하지 않고, 실업학교에서 직업훈련을 받은 후 적절한 직업을 갖도록 한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일자리를 구하는데 큰 문제가 없고, 직업을 갖게 되면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학벌이 아니라 기술의 숙련도나 자격에 의해서 임금이 결정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사회구성원 사이의 과도한 격차를 줄여주는 것도 독일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대학진학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다.

 

조 소장은 “교육개혁의 핵심은 단순히 공정한 입시 제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소정의 교육을 마친 이후에 발생하는 극심한 차별을 줄이는 데 있다고 본다”면서 “모든 직업 활동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급여 수준을 보장하는 것, 서로 다른 직업 간에 지나치게 큰 보상의 차이를 줄여가는 것, 동일한 일을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소속회사에 따라 주어지는 부당한 대우를 줄이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거슈니 교수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실력은 타고난 능력과 노력의 합으로, 실력 위주 사회란 본인이 갖춘 실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실력은 부모의 지위, 정보, 재력 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므로 순수한 의미에서 실력라고 하기 어렵다”며 “학벌에 대한 보상이 과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선재 기자 seoyun100@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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